6 February 2026
상희와 혜승, 우리 사이를 말할 것 같으면
Hae Seung Sung
우리는 2020년부터 6년간 온라인으로 알고 지낸 사이이면서도, 오프라인으로 알고 지낸 지는 7개월 정도 되었다. 그러니까 서로를 오래 알아온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새롭게 알아가는 관계이기도 하다.
Motherhood
2020년, 나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 시기에 나는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motherhood)’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 필요했다. 가족도, 오래된 친구들도 물리적으로는 멀리 있었고, 코로나가 만연했고, 일상에서는 주변에 임신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때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주 우연히 상희님을 알게 되었다. 상희님은 당시 막 아이를 낳은 상태였다. 직접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상희님의 게시물을 통해 몸의 변화, 막연한 불안, 아이의 발달, 필요한 육아 아이템들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었다. 누군가와 같은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감각만으로 좋았다.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앞선 시간을 지나고 있던 상희님과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나 혼자만의 친밀감이 조금씩 쌓여갔다.
한국
미국에 살면서 종종 한국에 가족을 보러 갔는데, 그 무렵 상희님의 남편분이 사진전을 열고 계셨다. (상희님의 남편은 사진작가이다.) 호기심과 묘한 친근감에, 알리지 않고 혼자 전시를 보러 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여러 우여곡절 끝에 나는 한국으로 역이민을 오게 되었다. 이 우여곡절은 다른 일기에 따로 적어야겠다.
상희님은 달리기를 정기적으로 하시고, 종종 달리기 루트를 올리시는데, 어느 날 보니 “어? 이거 우리 동네인데?” 싶었다. 우리가 같은 동네에 살게 된 것이다. 이러다 길에서 마주치는 거 아니야? 하고 혼자 웃어넘기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로, 약 일주일 뒤 길에서 마주쳤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는 대뜸 “상희님!” 하고 이름을 불렀다. 순간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그 짧은 어색함이 지나가고, 우리는 몇 마디 인사를 나눴다.
그 날 저녁, 상희님은 나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서 한번 Play date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셨다. (상희님은 아들 둘을 키우고 있고, 나는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다.) 동네에 아들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한 나는 그 제안이 감사하기도 하고, 또 오랫동안 핸드폰으로만 봐 왔던 사람을 실제로 알아가려 하니 두렵기도 했다.
두려움
그 두려움이 어떻게 보면 우리 사이를 더 가깝게 했던 것 같다.
서로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걸지 않았고, 그렇다고 거리를 두지도 않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서 만나는 관계는 부담이 적었고, 대화의 중심도 자연스럽게 아이들로 흘러갔다. 어떤 날은 날씨 이야기로, 어떤 날은 아이의 기질이나 잠버릇 같은 사소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온라인에서 쌓아온 5년의 시간 덕분에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예를 들어 삶의 태도라던가, 아이들의 이름과 대략적인 성향 등)가 많았고, 오프라인에서 만나며 비로소 알게 되는 성격과 말투, 반응들이 더해졌다. 둘 사이에는 어색함도 있었지만, 그 어색함을 굳이 없애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마음 이야기
아이들은 잘 어울렸다. 성향은 달랐지만, 아이들답게 서로를 탐색하며 조금씩 거리를 좁혀 갔다. 그 사이에서 어른인 우리는, 알게 모르게 점점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엄마라서 생기는 기쁨과 피로, 설명하기 어려운 우울감,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 이전에 지녔던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구, 그리고 자아 성취를 위해 감당해야 하는 현실적인 과제들.
우리는 가끔 눈물을 흘렸고, 가끔은 배꼽을 잡고 sarcastic하게 웃었으며, 또 어떤 날은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하루에 안도했다.
이 블로그는 우리가 나누고 있는 마음의 조각들을 글로 정리해보면 어떨까 해서 생긴 교환일기이자 기록지이다.
